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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스타] 896경기 만에 은퇴했던 감독, 896경기 만에 '500승 금자탑'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이 개인 통산 500승을 달성했다. LG는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뱅크 KBO리그 KT 위즈와 홈 경기에서 16-7 대승을 거뒀다. 전날(6일) 구본혁의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승리한 LG는 이날 승리로 2연승과 함께 KT와 3연전 위닝 시리즈를 기록했다. 선발 투수 최원태는 5이닝 동안 98개의 공을 던지면서 6개의 안타(홈런 1개)와 볼넷 2개를 내주며 4실점으로 흔들렸지만, 위기 마다 삼진을 8개나 잡아내면서 마운드를 지켜냈다. LG 타선은 장단 16개의 안타를 때려냈다. 사사구도 13개(12볼넷)나 얻어내며 KT 마운드를 맹폭했다. 이날 3번·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김현수는 4타수 3안타 2볼넷 4타점 2득점 맹타를 휘둘렀다. 이 승리로 염경엽 감독은 개인 통산 500번째 승리를 맛봤다.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2013~2016년) 와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2019~2020년), LG 트윈스(2023~) 세 팀의 지휘봉을 잡은 염경엽 감독은 896경기 만에 500승 고지를 밟았다. 현역 시절 선수로 896경기를 뛰고 은퇴한 염 감독은 감독 896경기 만에 500승 금자탑을 쌓았다. 염경엽 감독은 히어로즈 감독 시절 100승부터 300승까지 달성했다. 2014년 6월 6일 목동 두산 베어스전에서 100승을 달성한 염 감독은 2015년 7월 29일 목동 KT전에서 200승을, 2016년 9월 15일 고척 KT전에서 300승을 달성했다. 400승은 SK 감독 시절인 2020년 5월 31일 문학 한화 이글스전에서 달성했다. 이는 KBO리그 13번째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김영덕 전 빙그레 이글스 감독이 847경기(1991년 4월 27일 청주 롯데 자이언츠전) 만에 500승을 달성한 뒤 김응용(전 해태 타이거즈), 김성근(전 삼성 라이온즈), 강병철(전 한화), 김인식(전 두산), 김재박(전 현대 유니콘스), 이광환(전 LG), 김경문(전 두산), 조범현(전 KIA 타이거즈), 선동열(전 KIA), 류중일(전 LG), 김태형(전 두산)에 이어 13번째다. 경기 후 염 감독은 "지금까지 함께 해 준 코칭스텝과 선수들 덕분에 500승을 이룰 수 있었다"라면서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와서 좋은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과 함께 만든 성과라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잠실=윤승재 기자 2024.04.0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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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GG] 최대 격전지 유격수 승자는 오지환, 득표율 52.9%

최대 격전지 유격수 황금장갑의 주인공은 오지환(33·LG 트윈스)이었다.오지환은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23 KBO 골든글러브(GG) 시상식에서 유격수 부문 GG를 받았다. 유효표 291표 중 154표를 획득, 득표율 52.9%로 박찬호(KIA 타이거즈·41.2% 120표)를 따돌리고 2년 연속 GG를 차지했다. LG 소속 유격수가 GG를 품에 안은 건 김재박(1983~87, 89) 류지현(1998~99)에 이어 오지환이 역대 세 번째다.오지환은 정규시즌에서 타율 0.268(422타수 113안타) 8홈런 62타점을 기록했다. 정규시즌 성적은 박찬호(타율 0.301 3홈런 52타점)와 비교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LG를 29년 만에 통합우승으로 이끌어 가산점을 받았다. 오지환은 한국시리즈(KS) 5경기에서 타율 0.316(19타수 6안타) 3홈런 8타점으로 활약했다. 시리즈에서 출루율(0.409)과 장타율(0.842)을 더한 OPS가 1.251에 이르렀다. 특히 2~4차전에서 모두 손맛을 보여 단일 KS 사상 첫 3경기 연속 홈런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1승 1패로 맞선 3차전 5-7로 뒤진 9회 초 2사 1·2루에서 터트린 역전 결승 스리런 홈런은 리그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3차전을 짜릿한 역전승으로 마무리한 LG는 4·5차전마저 승리, 29년 동안 멈춰있던 우승 시계를 돌렸다.오지환은 수상 뒤 "2023년을 최고의 해로 만들어주신 염경엽 감독님 감사드린다. 많은 코치님과 차명석 단장님, 프런트, 너무 많은 분에게 도움을 받았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2023년이 저한테는 최고의 한해인 거 같다. 29년 만에 (팀이) 우승이라는 걸 해봤고, 지금이 시작점이라고 생각하겠다. 내년에도 LG가 정규시즌, 통합 우승해서 왕조를 할 수 있게 하겠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아이들에게 고맙다. 마지막으로 10개 구단 팬분들 모두 최고"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삼성동=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3.12.1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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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내야사령관에게 찾아온 시련, 국가대표 2루수는 그렇게 커간다

22세 사자군단 내야 사령관 김지찬(삼성 라이온즈)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김지찬에게 지난 28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은 악몽과도 같았다. 포구 실책 2개와 송구 실책 하나로 총 3개의 실책을 범하며 팀의 역전패를 바라봐야 했다. 전날(27일) 경기에서도 다소 조급한 송구 동작으로 9회 말 동점을 막지 못한 기억도 있어 충격은 더했다. 계속되는 실책에 김지찬은 얼어붙었다. 경기를 중계하던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도 “어린 나이에 입스(Yips·두려움 때문에 발생하는 불안 증세)가 찾아올 수 있다. 교체해줘야 한다”라며 김지찬의 멘털을 걱정했다. 이후 교체된 김지찬은 더그아웃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기를 바라봤고, 수비를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 하나하나를 찾아가 사과했다. 잔뜩 위축된 모습이었다. 김지찬의 수비 불안 이야기가 또 나왔다. 입단 이후 김지찬은 매 시즌 수비와 송구가 불안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올 시즌 초반은 달랐다. 시작부터 전문 2루수로 나선 첫 시즌에 김지찬은 6월 중반까지(6월 13일) 47경기에 나서 실책 2개만을 기록했다. 이재현(유격수)과 김영웅(3루수) 등 자신보다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김지찬은 제 역할을 다해왔다. 그러나 팀이 연패에 빠지고 최하위까지 떨어지면서 김지찬의 평정심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5연패 두 번에 팀이 역전패(20회)를 당하는 일이 잦아지자 선수단 전체에 조급함이 생겼고, 김지찬도 마찬가지였다. 6월 초순 이후 김지찬은 무려 7개의 실책을 범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연패를 끊어내야 한다는, 최하위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제3자의 눈에서도 보일 정도로 흔들렸다. 선수의 멘털과 팀 상황이 맞물린 결과였다.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김지찬이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과거 국가대표 2루수로 이름을 날린 정근우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시절 김성근 감독의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성장했다. 당장 눈앞엔 김재박 감독(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펑고를 포수 장비까지 차고 받으며 ‘국민 유격수’가 된 박진만 감독이 있다. 박진만 감독도 “나도 어렸을 때 그랬다(실수가 많았다)”라면서 “눈치 보지 말고, 주눅 들지 말고 했으면 좋겠다”라며 김지찬을 격려했다. 최고의 야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김지찬도 훈련과 경험, 그리고 시련의 복기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김지찬은 이미 올 시즌 초에 탄탄한 수비를 자랑하며 지난해 시련을 극복해냈다. 지금의 위기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향후 그의 성장에도 큰 힘이 될 터. 김지찬은 삼성뿐 아니라 한국야구의 미래다. 오는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내야수로도 발탁됐다. 미래를 위해 반드시 살려야 하고, 살아나야 하는 젊은 선수다. 지금의 시련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탄탄해질 김지찬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윤승재 기자 2023.06.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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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클래식] "2009 WBC 결승전 패배, 이치로 고의4구 확실히 지시 못한 내 실수"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본격적인 출범 전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한국야구위윈회(KBO) 이사회에서 전년도 우승팀 감독이 WBC 지휘봉을 잡기로 했다. 2008년 통합 우승 팀은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였다. 당시 SK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성근 감독이 건강이 좋지 않은 이유로 대표팀 사령탑을 고사했다. 당시 필자는 한화 이글스 사령탑으로 마무리 훈련을 지휘하던 중이었다. 고(故) 하일성 사무총장이 대전으로 내려오더니 "1회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도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필자 역시 2006년 뇌경색 진단을 받은 뒤 건강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일성 총장은 사령탑 선임이 난항을 거듭하자 다시 필자를 찾아와 간곡히 요청했다. 당시 이런 내용이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다. 숙소에서 야구장까지 걸어 다니는데, 거리에서 만난 대전 시민들이 "WBC 잘 다녀오세요"라며 날 응원하더라. 그래서 하일성 총장을 만나 딱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2006년 WBC 대표팀 코치진이 2009년 대회에서도 같은 보직을 맡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1회 대회 선동열 투수 코치 (삼성 라이온즈) 김재박 타격 코치 (LG 트윈스) 조범현 배터리 코치(KIA 타이거즈)는 프로팀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하 총장이 '걱정마라'고 약속해 사령탑을 맡았는데, 이들 모두 대표팀 코치진 합류를 고사했다. 며칠 뒤 기자회견 때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류중일(전 LG 감독)을 제외한 나머지 코칭스태프의 얼굴이 싹 바뀌었다. 2회 대회 준우승을 거두는 데 코치들의 역할이 컸다. 아주 수고가 많았다. 선수들도 좋았다. 마운드에선 봉중근과 정현욱, 타선에선 추신수와 김태균 이범호의 활약이 돋보였다. 대표팀의 하와이 합숙 훈련 때 이전부터 어깨 부상을 겪은 박진만이 결국 제외됐다. 그대 대표팀이 다 같이 모여 '박진만이 부상으로 내일 돌아간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대신 합류한 박기혁이 굉장히 수비를 잘했다. 선수와 코치 모두에게 이번 칼럼을 통해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첫 경기서 대만을 9-0으로 꺾었지만, 다음 경기인 일본전에서 선발 투수 김광현의 컨디션 난조로 2-14 콜드 게임 패배를 당했다. 그래도 중국(14-0 승)과 다시 만난 일본을 1-0으로 꺾고 A조 1위로 미국으로 향했다. WBC는 2회 대회에서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과 1위 결정전을 도입했다. 독특한 운영 방식에 따라 한국은 일본과 무려 5차례나 맞붙었다. 이후 일본과 1승 1패를 더 주고받은 대표팀은 베네수엘라와 준결승에서 10-2로 이겼다. 선발 투수 윤석민이 6과 3분의 1이닝 2실점으로 잘 던졌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면 연봉 1000만 달러 이상 받는 선수들이 대거 나왔는데 우리가 손쉽게 격파했다. 그리고 결승에서 일본을 만났다. 이 대회에서만 5번째 맞대결이었다. 1-3으로 끌려가던 8회 말 이대호의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따라갔고, 9회 말 2사 1·2루에서 이범호가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안타를 때려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 10회 초 2사 2·3루 수비, 타석에는 스즈키 이치로가 들어섰다. '이치로를 걸러 1루로 내보내라'고 사인을 줬다. 이때 '작전 미스'가 있었다.요즘에는 심판에게 자동 고의사구 의사를 전달하면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볼 4개가 판정 나야 타자가 1루로 걸어 나갈 수 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포수가 아예 일어서서 공을 받거나, 포수가 앉아 있는 상황에서 투수가 스트라이크존을 완전히 벗어나게 던지는 것이다. 그때 후자를 선택했다. 임창용이 8구 대결 끝에 이치로에게 2타점 결승타를 내줘 3-5로 졌다. 포수가 일어나서 받도록 확신한 사인을 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감독으로서 큰 실수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임창용이라도 3루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일부러 볼을 던지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후배 지도자들에게 꼭 강조하고 싶다. 타자와의 승부를 피하고 싶다면, 자동 고의사구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는 게 좋다. 어떤 상황에서든 좀 더 세밀하고 확실한 사인을 전달해야 한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정리=이형석 기자 2023.03.0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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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소방차 출동하고 정전 사고, 감독 청문회까지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두 번째 왕조 연 삼성 삼성이 한국시리즈(KS) 5차전에서 SK(현 SSG)를 1-0으로 물리치고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삼성은 전년도 김성근 감독이 이끈 SK에 4전 전패로 패한 아픔을 갚았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1983년 김응용(해태) 2005년 선동열(삼성)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부임 첫 시즌 우승을 이끈 사령탑이 됐다. 이후 삼성은 2015년까지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 4년 연속 한국시리즈 KS 우승을 달성했다. ②김성근 감독, SK 떠나다 김성근 감독은 재계약 문제로 구단과 불편한 관계 중에 8월 17일 문학 삼성전을 앞두고 "올 시즌 뒤 SK를 떠나겠다"고 폭탄 선언했다. 구단은 다음날 김성근 감독을 전격 경질하고, 이만수 퓨처스(2군) 감독에게 1군 임시 지휘봉을 맡겼다. SK 왕조(KS 우승 3회)를 이끈 김 감독의 전격 퇴장이었다.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반대하는 SK 일부 팬은 8월 18일 경기 종료 후 물병 투척 및 그라운드에 난입해 '유니폼 화형식'을 했다. ③오승환 대기록 축하한 소방차 8월 12일 대구 KIA전에서 오승환이 세계 최소경기(334경기), 국내 최연소(29세 28일) 200세이브를 달성했다. 오승환의 대기록 달성 순간 이를 기념하는 축포가 터졌는데, 전광판 우측 상단에 불이 붙어 화염이 치솟았다. 소방수(마무리 투수)를 축하하는 행사에 급기야 '진짜' 소방차가 출동했다. 인터뷰에서 오승환은 "제가 불 끄러 갈까요"라며 황당해했다. 오승환은 그해 평균자책점 0.63을 기록하며 2006년 자신이 작성한 아시아 한 시즌 최다 세이브(47개) 타이기록에 이어, KS MVP까지 차지했다. ④1948년 개장 대구구장 정전 4월 16일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두산 정수빈이 8회 절묘한 기습번트를 대고 1루로 달려가는 순간 갑자기 암흑천지로 변했다. 6개 조명탑 불이 모두 꺼진 것이다. 12분 뒤 일부 시설이 복구됐지만, 3루 측 조명은 끝내 켜지지 않았다. 심판진과 양 팀 관계자가 모여 논의한 결과 사고 발생 48분 만인 8시 16분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됐다. 경기는 다음 날 정수빈 타석에서 재개됐고, 두산이 3-2로 이겼다. ⑤LG팬 감독 청문회 요구 LG는 8월 14일 잠실 홈 경기에서 롯데에 1-4로 졌다. 당시 5위 LG와 4위 롯데의 승차가 2.5경기로 벌어지자 LG 팬 수백 명이 야구장 입구를 막고 시위했다. 'LG 가을 야구, 또 내년입니까'라는 현수막을 펼쳐 든 채 "감독 나와라"라며 청문회를 요구했다. 팬들에게 박종훈 LG 감독은 다음 날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질책을 달게 받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사과했다. 결국 LG는 김기태 수석코치를 신임 사령탑에 선임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3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02년 준우승 이후 11년 만이었다. ⑥장효조·최동원 별세 장효조 삼성 퓨처스 감독이 9월 7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선수 시절 그는 천부적인 타격 재능과 끈질긴 집념으로 '타격 기계'로 평가받았다. 통산 961경기에서 타율 0.331을 기록했다. 당시로는 3000타수 이상 소화한 타자 중 최고 타율이었다. 일주일 뒤인 9월 14일, 또 하나의 레전드 최동원 전 한화 퓨처스 감독도 직장암으로 별세했다. 통산 103승 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을 기록한 그는 1984년 롯데의 KS 우승 당시 홀로 4승을 책임졌다. 롯데는 최동원의 등 번호 1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⑦9구단 NC 창단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월, 9구단 창단 우선협상대상자로 NC를 선정했고 3월 말에는 NC의 창단을 승인했다. NC는 8월 2일 다이노스라는 팀 이름을 발표했고, 8월 31일 초대 사령탑으로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을 선임했다. 김 감독은 두산에서 사퇴한 지 두 달 만에 복귀했다. NC는 신인 드래프트, 2차 드래프트, 외국인 선수(4명 등록, 3명 출전) 등을 통해 선수단을 구성했고 2012년 퓨처스리그에 참가했다. ⑧이용훈 2군 퍼펙트게임 롯데 이용훈이 9월 17일 한화와의 퓨처스리그 경기에 9이닝 동안 27명의 타자를 모두 범타로 처리,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1~2군을 통틀어 KBO 역사상 첫 번째 기록이다. 이용훈은 111개의 공을 던졌고 탈삼진 10개를 기록했다. 2000년 삼성에 입단한 이용훈은 SK를 거쳐 롯데에서 뛰었는데, 1군 통산 190경기에서 42승 49패 평균자책점 5.30을 기록한 뒤 2014년 은퇴했다. ⑨심수창 최다연패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일, LG는 투수 심수창과 내야수 박병호를 키움에 주고 투수 송신영과 김성현을 받는 트레이드를 했다. 심수창은 8월 3일 대구 삼성전에서 이적 후 첫 등판에 나섰다. 총 6이닝 7피안타 3실점을 기록했지만, 팀이 2-3으로 져 패전 투수가 됐다. 이로써 리그 역사상 최다인 18연패에 빠졌다. 심수창은 LG에서 뛴 2009년 6월 26일 SK전부터 승수 쌓기에 실패했다. 심수창은 8월 9일 사직 롯데전에서 6과 3분의 1이닝 1실점 호투, 승리 투수가 되면서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⑩30주년 레전드 올스타 KBO는 프로야구 30주년을 기념해 포지션별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10 투표를 진행했다. 이만수(포수)가 최다 점수를 얻어 최고 인기 스타로 뽑혔다. 선동열(투수) 장종훈(1루수) 박정태(2루수) 한대화(3루수) 김재박(유격수) 장효조·이순철·양준혁(이상 외야수) 김기태(지명타자)가 포지션별 레전드 올스타에 선정됐다. 이형석 기자 사진=IS포토 2022.1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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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막 올린 SK 왕조, 최고의 KS 명승부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SK 왕조의 서막 SK(현 SSG)는 정규시즌 73승 5무 48패를 기록,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2차전을 모두 내줘 통합 우승 도전에 암운이 드리웠다. 하지만 3차전 마이크 로마노의 호투와 상대 실책을 묶어 반격했다. 4차전은 정규시즌 내내 기대를 밑돌았던 신인 김광현의 7과 3분의 1이닝 무실점 호투를 발판 삼아 4-0으로 이겼다. 이어 5~6차전까지 모두 이긴 SK는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1~2차전을 내주고도 우승하는 팀으로 우뚝 섰다. SK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라, 세 차례(2007, 2008, 2010) 우승으로 왕조를 건설했다. ②김성근 감독 첫 우승 2006시즌 종료 후 SK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은 낮에는 강훈련, 밤에는 정신교육을 통해 선수들에게 근성을 심어줬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도자를 맡았던 그는 OB-태평양-쌍방울-LG 등 중하위권 팀을 상위권으로 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정작 우승을 경험하진 못했으나, 2007년 SK에서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달성, 뒤늦은 전성기를 열었다. ③왕조의 라이벌 두산 김경문 감독이 이끈 두산은 빠르고 끈끈한 팀이었다. 2007년 최초로 한 팀에서 30도루 이상 선수를 세 명(이종욱-고영민-민병헌)이나 배출했다. 리오스가 정규시즌 MVP, 임태훈이 신인상을 차지했다. 2004년 두산 사령탑에 부임한 김경문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두 번째 고배를 마셨지만, 4시즌 동안 3차례나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아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두산은 SK와 여러 차례 명승부를 펼쳤다. 현대는 11년간 지휘봉을 잡은 김재박 감독이 LG로 떠난 뒤 김시진 감독과 계약했다. 하지만 모기업의 재정난 덕에 정상 운영이 어려웠다. 결국 KBO의 야구발전기금을 지원받아 간신히 시즌을 치렀다. 2007년 1월 농협의 인수 추진이 불발됐고, 시즌 막판에는 STX 인수설이 퍼졌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는 2007시즌을 끝으로 간판을 내렸다. 네이밍 스폰서를 내세운 우리 히어로즈가 해체된 현대 선수단과 프런트를 승계해 재창단했다. ⑤양준혁 최초 2000안타 6월 9일 잠실 두산전 9회, 삼성 양준혁이 우완 이승학으로부터 중전 안타를 뽑아 KBO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2000안타를 기록했다. 이 순간,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양준혁은 통산 2318안타를 기록한 뒤 2010년 은퇴했다. 2022년 정규시즌까지 통산 2000안타를 고지를 밟은 선수는 총 16명이다. ⑥리오스 20승, MVP, 진기록까지 2002년 KIA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입성한 리오스는 2007년 두산 소속으로 22승 5패 평균자책점 2.07을 기록했다. 1999년 정민태(1구원승 포함) 이후 8년 만의 20승 투수이자 1995년 이상훈 이후 12년 만에 선발 20승을 달성했다. 6월 16일 인천 SK전 8회에는 정확히 9개의 공으로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 역대 최초로 1이닝 9구 3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정규시즌 MVP와 골든글러브까지 휩쓸었다. ⑦이만수 팬티 퍼포먼스 이만수 SK 수석코치는 "문학구장에 만원 관중이 들어차면 팬티만 입고 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2007년 5월 26일 문학구장에는 2년 만에 만원 관중이 입장했다. 이 수석코치는 클리닝타임 때 뒷부분이 벌거벗은 엉덩이 모양으로 제작된 팬티를 입고 팬·구단 직원 22명과 함께 팬티 퍼포먼스를 펼쳤다. ⑧해외파 복귀 지명 2007년 1월 단장 회의와 이사회를 거쳐 해외파 선수의 국내 복귀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특별규정을 만들었다. 미국 무대에 진출한 선수는 현지 팀의 엔트리에서 제외된 후 2년 동안 국내 프로야구에 복귀할 수 없다는 규정에 예외를 둔 것이다. KIA 최희섭, 롯데 송승준, LG 류제국, 삼성 채태인, 두산 이승학, 현대 김병헌 등을 지명했다. 당시 SK의 지명을 받은 추신수는 2021년 SSG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데뷔했다. ⑨이현곤 타격왕, 송진우 최고령 출장 KIA 이현곤이 타격왕(0.338)과 최다안타(153개) 2관왕을 차지했다. 이현곤은 프로 통산 12시즌 통산 타율은 0.272다. 한화 송진우는 5월 26일 대전 두산전에서 역대 투수 최고령 출장 기록(41세 3개월 10일)을 세웠다. 2009년 은퇴한 송진우의 최고령 출장 기록(43세 7개월 7일)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⑩베이징 올림픽 예선 대만에서 열린 제24회 아시아선수권이 열렸는데,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 직행 티켓 한 장이 걸려있었다.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에 박찬호가 합류했지만 서재응, 김병헌, 구대성, 이승엽 등이 빠져 최상의 전력은 아니었다. 한국(2승 1패)은 결승 리그에서 일본(3승)에 패해 직행 티켓 확보에 실패했다. 2008년 3월 대륙별 플레이오프를 통과한 한국은, 결국 그해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서 금메달 신화를 이뤘다. 이형석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연합뉴스 2022.12.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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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압도적 괴물'의 등장, WBC 4강 영광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 '괴물' 류현진 등장 한화 류현진이 프로야구 역사를 새롭게 썼다. 1982년 KBO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왕을 동시 석권했다. 그해 류현진의 기록은 18승 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23. 다승과 평균자책점, 탈삼진(204개) 1위로 1991년 선동열 이후 15년 만에 투수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당연히 둘 다 좋은데, 신인왕보다는 MVP가 더 좋다"고 말했다. ② WBC 4강 신화 김인식 감독이 이끈 야구 대표팀은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올랐다. WBC는 올림픽, 아시안게임과 달리 미국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주관하는 국제 대회로 높은 관심이 쏠렸다. 대표팀은 미국에서 열린 본선 라운드에서 멕시코와 미국, 일본 등을 격파하고 4강 신화를 썼다. 미국이 자국의 우승을 위해 만든 기형적인 경기 운영 탓에 4강에서 다시 만난 일본에 패했지만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③ 악몽의 LG LG로선 지우고 싶은 한해였다. 126경기 중 47승밖에 따내지 못해 창단 첫 꼴찌에 머물렀다. 승률이 0.385로 참담했다. 2004년 구단 제7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순철 감독이 계약 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6월 4일 자진해서 사퇴했다. 2001년 이광은, 2002년 김성근, 2003년 이광환 전 감독에 이어 '감독 잔혹사'가 반복됐다. LG는 양승호 감독 대행 체제로 잔여 시즌을 치른 뒤 김재박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④ 200승 날아오른 '송골매' 한화 송진우는 8월 29일 광주 KIA전에서 프로야구 사상 첫 통산 200승을 달성했다. 1997년 9월 100승, 2002년 5월 150승을 차례로 정복한 뒤 40세 6개월 13일의 나이로 200승을 금자탑을 완성했다. 그는 기록 달성 후 "3000이닝 투구에 더 욕심이 난다"고 말했다. 2009년 4월 전인미답의 3000이닝까지 돌파했다. 그해 은퇴한 송진우의 통산 성적은 210승 153패 17홀드 103세이브 평균자책점 3.51이다. ⑤ 이와세 넘어선 오승환 삼성 오승환의 프로 두 번째 시즌은 그의 공처럼 묵직했다. 63경기에 등판, 4승 3패 47세이브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했다. 10월 1일 수원 현대전에서 1과 3분의 1이닝 무실점 쾌투로 일본 프로야구(NPB) 이와세 히토키(당시 주니치 드래건스)가 보유한 단일 시즌 아시아 최다 세이브 기록(46세이브)을 뛰어넘었다. 프로야구 단일 시즌 40세이브는 1994년 정명원(당시 현대·40세이브) 2000년 진필중(두산 베어스·42세이브)에 이은 역대 세 번째였다. ⑥ 도하 참사 국제대회 성과는 희비가 엇갈렸다. 3월에 열린 WBC 상승세를 12월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이어 가지 못했다. 김재박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아시아 라이벌' 대만과 사회인 야구팀이 참가한 일본에 연속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특히 일본전에선 오승환이 끝내기 스리런 홈런을 맞고 7-10으로 무릎 꿇었다. 동메달을 목에 건 대표팀은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대회에 이어 아시안게임 3연패 도전도 실패로 끝났다. ⑦ 쌍둥이 유니폼 입은 봉중근 5월 MLB에서 활약하던 봉중근이 LG 유니폼을 입었다. LG는 그의 마음을 잡기 위해 계약금 10억원, 연봉 3억5000만원을 안겼다. 계약금 10억원은 2006년 신인 한기주(당시 KIA)가 받은 한국프로야구 신인 최고 계약금과 같다. 다만 국내 프로구단에 소속된 적이 없는 봉중근은 KBO리그 규정상 신인 선수 신분이라 2006년이 아닌 2007년 신인 1차 지명을 거쳐 2007시즌부터 활약했다. ⑧ 이대호 '트리플 크라운' 2006년 '타자 MVP'는 롯데 이대호였다. 그는 122경기에서 타율 0.336 26홈런 88타점을 기록, 타율·홈런·타점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하지만 팀 성적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롯데는 승률 0.407(50승 3무 73패)로 리그 7위에 머물렀다. 시범경기 기간 마무리 투수 노장진이 팀을 무단으로 이탈했고, 4월엔 에이스 손민한이 충수염 수술로 공백기를 가졌다.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아 이대호의 활약이 유독 외로웠다. ⑨ 이승엽 400홈런 2006년 NPB에서 뛰던 이승엽이 한·일 통산 400홈런을 터트렸다. 8월 1일 한신 타이거스와 홈 경기에서 통산 400홈런과 401호 홈런을 때려냈다. 삼성에서 활약한 9년간 324개의 홈런을 쳐낸 이승엽은 2004년 NPB로 이적한 뒤 76개를 보탰다. 만 29세 11개월 13일에 400홈런을 달성, NPB 오 사다하루(왕정치) MLB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만 서른 살 이전에 400홈런을 터뜨린 선수로 기록됐다. ⑩ 또 우승 트로피 품은 삼성 한국시리즈(KS)에서 웃은 팀은 삼성이었다. 현대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KS에서 한화 이글스를 4승 1무 1패로 꺾고 2002·2005년에 이어 통산 세 번째 KS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시리즈 MVP는 타율 0.280(25타수 7안타) 2타점을 기록한 박진만이 차지했다. 타격 성적이 압도적이지 않았지만, 시리즈 향방을 좌우한 3차전 결승타를 때려냈고 결정적인 호수비로 팀 승리를 견인했다. 배중현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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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찬란했던 현대 왕조의 마지막 장..프로야구 흥행은 참패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 박종호, 39경기 연속 안타 박종호는 현대 소속이었던 2003년 8월 29일 수원 두산전부터 삼성 소속으로 뛴 2004년 4월 21일 수원 현대전까지 39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1999년 박정태가 세운 종전 KBO리그 기록(31경기)을 갈아치웠고, 다카하시 요시히코가 갖고 있던 일본 리그(NPB) 기록(33경기)까지 넘어섰다. 거침없던 박종호의 질주는 4월 22일 현대전에서 제동이 걸렸다. 1998년 신인왕 김수경을 공략하지 못했다. ② 이강철, 통산 최다 탈삼진 신기록 KIA 이강철은 5월 13일 광주 현대전에서 구원 등판, 삼진 2개를 잡아냈다. 개인 통산 1699번째 삼진을 잡아내며 선동열이 갖고 있던 개인 최다 탈삼진 기록(1688개)을 넘어섰다. 1989년 데뷔, 1군 무대 15번째 시즌에 이룬 쾌거였다. 이강철은 이듬해 은퇴까지 탈삼진 1751개를 남겼다. 현재 통산 탈삼진 1위 기록은 송진우가 세운 2048개다. ③ 전준호, 역대 최초 450도루 KBO리그 최고 '대도' 전준호는 4월 27일 수원 KIA전에서 14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달성했다. 이어 5월 23일 수원 LG전에선 KBO리그 최초로 개인 450호 도루를 해냈다. 전준호는 2004시즌 정규시즌에서 도루 53개를 해내며, 이 부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④ 다시 사직 마운드에 오른 최동원 2004년 올스타전은 롯데의 홈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다. 삼성과의 1984시즌 한국시리즈(KS)에서 혼자 4승을 거두며 롯데의 우승을 이끈 최동원이 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올스타전 시구자로 나섰다. 그는 포수 홍성흔을 향해 시속 101㎞의 공을 뿌리며 녹슬지 않은 어깨를 과시했다. ⑤ 김민재 9타석 연속 안타 SK(현 SSG) 김민재는 9월 16일 잠실 LG전 마지막 타석을 시작으로 18일 한화 이글스전 네 타석, 19일 한화전 네 타석까지 9연타석 안타를 기록했다. KBO리그 연속 타석 안타 신기록. 1983년 장효조, 1986년 이만수, 2000년 김기태가 기록한 종전 기록(8연타석)을 넘어섰다. 김민재의 기록은 2013년 LG 이병규가 10연타석 안타를 치며 깨졌다. ⑥ 프로야구 흥행 참패 KBO는 2004시즌 개막을 앞두고 '350만 관중'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최종 관중 수는 233만 1978명이었다. 이는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200만 관중 시대를 맞이한 1989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였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관심이 높아진 국내 축구 리그 인기에 밀렸고, '국민 타자' 이승엽이 일본 리그에 진출하며 스타 부재에 시달렸다. 9월 초 터진 병역 비리 파문에 야구 선수 다수가 연루되며 팬들의 실망감을 사기도 했다. ⑦ 현대, 역대 두 번째 KS 2연패 김재박 감독이 이끈 현대는 정규시즌 75승 5무 53패로 삼성을 따돌리고 2년(2003~2004)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클리프 브룸바가 외국인 타자로는 역대 최초로 타율 1위(0.343)에 오르며 공격을 이끌었고, 송지만과 심정수도 각각 22홈런을 기록하며 타선에 무게감을 더했다. 마운드에선 외국인 투수 마이클 피어리가 후반기에만 12연승을 거드는 등 부상으로 이탈한 정민태의 공백을 메웠다. 삼성을 상대한 KS에선 현대는 9차전까지 치르는 치열한 접전 끝에 먼저 4승(3무 2패)을 거뒀다. '경기 시작 4시간 이후 연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이 적용된 탓에 7차전까지 3경기(1·4·7차전)나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현대는 폭우 탓에 3번이나 경기가 중단되는 악재 속에 치른 9차전에서 8-7로 승리, 해태 이후 역대 두 번째로 KS에서 2연패를 거둔 팀이 됐다. 현대 왕조의 마지막 우승이었다. ⑧ 배영수, MVP 수상 삼성 투수 배영수는 다승 공동 1위(17승) 승률 1위(0.895) 평균자책점 3위(2.61) 탈삼진 4위(144개)에 오르며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배영수는 KS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0-0으로 리드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마운드를 넘기며 대기록 달성은 실패했다. 신인왕은 10승 평균자책점 3.99를 기록한 현대 투수 오재영(개명 뒤 오주원)이 수상했다. ⑨ '국보 투수' 선동열, 감독 취임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삼성은 KS가 끝난 뒤 선동열 감독 체제로 새 출발 했다. 2001년부터 사령탑을 맡았던 김응용 감독은 삼성 야구단 사장으로 선임됐다. 삼성 수석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한 선 감독은 계약 기간 5년, 총액 15억원(계약금 5억원·연봉 2억원)에 계약, 당시 사령탑 역대 최고 몸값을 기록했다. 안희수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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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선동열·김성한 없는 해태의 V8...현대 왕조 서막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리틀 쿠바' 박재홍 등장 현대 신인 박재홍이 프로야구를 뒤흔들었다. 데뷔 시즌 126경기에 출전, 타율 0.295 30홈런 108타점 36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9월 3일 LG전에서 김용수를 상대로 좌월 홈런을 때려내며 역대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그해 홈런왕과 타점왕에 올랐다. 박재홍이 데뷔 시즌 최다 홈런과 타점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만장일치(유효 30표)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②김성근의 쌍방울, 반전 2위 쌍방울은 정규시즌 2위(70승 2무 54패)에 오르며 1군 진입 6시즌 만에 가을야구에 나섰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은 김현욱·조규제·오봉옥을 앞세워 중간 계투진을 강화, 1점을 짜내고 지키는 야구로 쌍방울의 상위권 도약을 이끌었다. 간판타자 김기태의 성적은 이전 시즌보다 떨어졌지만, 김광림(타율 0.303)이 분전했다. 연고지 전주엔 야구 열풍이 불었고, 쌍방울은 창단 뒤 가장 많은 홈 관중(26만 5918명)을 기록했다. ③현대, 창단 첫 시즌 'KS 진출' 현대는 창단 첫 시즌 돌풍을 일으켰다. 1995시즌 7위였던 태평양을 인수한 만큼 기대가 크지 않았으나, 정규시즌 4위에 올랐다. 포스트시즌에선 한화와 쌍방울을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KS)까지 진출했다. 정민태·정명원·위재영이 지키는 현대 마운드는 꽤 높았다. 김경기·이숭용·박재홍이 이끄는 타선의 짜임새, 신인 박진만이 지키는 내야도 탄탄했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렸던 김재박 감독은 현대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④'이빨 빠진 호랑이'의 우승 개막 전 해태를 향한 전망은 밝지 않았다. 선동열이 일본 무대로 진출했고, 김성한이 은퇴했기 때문이다. 시범경기에서 해태는 1승 1무 4패에 그쳤다. 그러나 이종범과 이대진, 투·타 핵심 선수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6월 이후 상승세를 탔다. 7월에는 15승(1무 5패)을 챙기며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선두를 내주지 않고 1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조계현은 시즌 최다 완투(11번)를 해냈다. 해태는 현대와 맞붙은 KS에서도 4승(2패)을 먼저 거두며 통산 8번째 KS 우승을 차지했다. KS 진출 시 우승 확률 100% 기록도 이어갔다. ⑤정명원, 최초 KS 노히트노런 현대 정명원은 10월 20일 열린 해태와의 KS 4차전에 선발 등판, 9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2볼넷 1사구 9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노히트노런을 해냈다. 앞선 15시즌(1982~1996) 동안 노히트노런 8번은 모두 정규시즌 경기에서 나왔다. 이후에도 포스트시즌에서 노히트노런을 해낸 투수는 없었다. 마무리 투수였던 정명원을 선발로 내세운 김재박 당시 현대 감독의 '변칙' 용병술도 빛났다. ⑥투수 4관왕 구대성, MVP 한화 구대성은 1996년 정규시즌에서 18승 3패 24세이브(40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에는 마무리 투수를 맡았지만, 5월 11일 삼성전을 기점으로 선발 투수로도 나섰다. 다승과 구원, 평균자책점과 승률(0.857) 1위에 오른 그는 신인 박재홍의 돌풍을 잠재우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⑦이강철, KS MVP 수상 해태 이강철은 데뷔 첫 시즌(1989년)부터 15승을 거뒀지만, 팀 선배 선동열과 조계현에 가려 있었다. 그는 1996년 KS에서 완봉승을 포함해 2승 1세이브 13탈삼진 평균자책점 0.56을 기록하며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강철은 1996년을 돌아보며 "당시 KS MVP는 정규시즌 MVP만큼 영광스러운 타이틀이었다. 서로 등판하고 싶어서 경쟁했다. 의미가 큰 수상"이라고 돌아봤다. ⑧'불사조' 박철순 은퇴 프로야구 원년 흥행을 이끌었던 스타 박철순이 10월 4일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1982년 24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를 기록하며 MVP에 올랐다. 지난 시즌까지 깨지지 않은 '단일 시즌 최다 연승' 기록(22연승)도 그해 세웠다. 그는 허리, 아킬레스건 등 끊임없이 이어진 부상 속에 신음하면서도 우리 나이로 마흔한 살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통산 성적은 231경기 76승 53패 20세이브 평균자책점 2.95. 야구팬은 그에게 '불사조'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안희수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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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프랜차이즈 출신 사령탑도 피하지 못했다…LG의 '감독 잔혹사'

류지현(51) 감독이 LG 트윈스 유니폼을 벗는다. LG는 지난 4일 "이번 시즌을 끝으로 임기가 만료되는 류지현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류지현 감독은 2년 계약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LG는 28년째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우승 트로피들 들어 올리지 못해 사령탑 교체가 잦은 편이었다. 가장 최근 재계약에 성공한 사령탑은 1990년대 후반 천보성 감독이었다. 1996년 말 정식 지휘봉을 잡은 천보성 감독은 1997년과 1998년 2년 연속 LG를 한국시리즈 진출로 이끌었다. 당시 해태와 현대에 각각 1승 4패, 2승 4패로 패해 정상에 오르진 못했지만 2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천보성 감독도 재계약 첫 시즌인 1999년 팀이 6위로 떨어지자 계약 1년을 남겨두고 경질됐다. 우승 사령탑도 성적 부진으로 지휘봉을 오래 잡진 못했다. 1990년 LG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백인천 초대 감독은 1991년 6위에 그치자 재계약에 실패했다. 1994년 LG의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광환 감독은 우승 직후 3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1996년 7월 팀이 7위로 부진하자 임기 도중 경질됐다. 2000년 이후에는 재계약에 성공한 감독이 한 명도 없다. LG는 2000년 MBC 청룡-LG를 거친 이광은 감독을 신임 사령탑에 앉혔다. 하지만 2001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김성근 감독이 대행을 거쳐 2002년 정식 지휘봉을 잡아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이끌었지만, 구단과의 마찰 속에 팀을 떠났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광환 감독을 2003년 다시 모셨지만, 1년 만에 작별했다. 후임 이순철 감독도 3년 계약을 채우지 못하고 2006년 도중 자리를 떠났다. LG는 '우승 청부사' 김재박 감독을 영입했다. 김 감독은 현대 유니콘스 11년 동안 4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LG에선 계약 기간 3년 내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듬해 LG는 박종훈 감독과 파격적인 5년 계약을 맺었으나 성적 부진으로 2년 만에 경질했다. 이후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2013시즌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으나 이듬해 시즌 도중 자진 사퇴했다. 이후 LG는 양상문 감독을 거쳐, 삼성 시절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이끈 류중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으나 역시나 정상 등극에는 실패했다. 류중일 감독은 2020시즌 준플레이오프 탈락 다음 날 구단 사무실을 찾아 먼저 작별 인사를 했다. 2020년 11월, 류지현 감독은 LG의 첫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사령탑이 됐다. 앞서 이광은, 김재박 등 MBC 청룡에서 전성기를 보낸 감독도 거쳤지만, LG 트윈스에서 성장한 사령탑은 그가 처음이다. 류지현 감독은 올 시즌 LG를 정규시즌 2위로 이끌어 재계약이 무난할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서 정규시즌 순위가 낮았던 팀에 무릎을 꿇었다. 선수 육성과 체력 안배를 통해 장기 레이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을 선보였다. LG는 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승률(0.613)을 달성했다. 우승에 목마른 LG는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성과가 극명하게 다른 류지현 감독의 재계약을 고민했다. 결국 구단 최고위층에서 사령탑 교체를 결정했다. LG의 감독 잔혹사는 계속 이어졌다. 이형석 기자 2022.11.0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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